인간의 헛된 야망과 어리석음이 낳은 비극
  • 이경관기자
인간의 헛된 야망과 어리석음이 낳은 비극
  • 이경관기자
  • 승인 2017.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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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숙 교수의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읽기
▲ 권오숙 교수가 포항시민들에게 ‘맥베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경북도민일보 = 이경관기자]  포항시립도서관은 겨울방학을 맞아 지난 1~22일까지 4회에 걸쳐 셰익스피어 국내 권위자 권오숙 한국외대 교수를 초청해 특별강연을 진행했다.
 ‘햄릿’, ‘리어왕’, ‘오셀로’에 이어 마지막으로 ‘맥베스’ 들여다본다.
 
 (4)맥베스
 ‘맥베스’는 홀린셰드의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연대기’ 중 스코틀랜드편의 ‘맥베스 전기’를 원전으로 한다.
 셰익스피어는 극적 응집력을 위해 홀린셰드의 원전을 과감히 변형했다.
 원전에서는 맥베스가 왕권 찬탈 후 꽤 오랫동안 선정(善政)을 베푼 것으로 나오지만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는 왕권 찬탈 후 바로 폭군으로 변하고 정통 왕권 계승자인 말콤 왕자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파멸하게 된다.
 ‘맥베스’는 인간의 헛된 야망에 대한 통찰력있는 분석을 통해 인간의 어리석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맥베스의 비극적 결함은 ‘야망’에 있다.
 ‘맥베스’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중 2082행으로 가장 짧다. 또 마녀, 유령, 예언, 마법 등과 같은 초자연적 요소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세 마녀’는 이 극에서 역설적인 존재다.
 마녀들은 기존의 의미들을 혼란시키고, 엄격한 경계를 무너뜨린다.
 이들은 여자이기도 하고 남자이기도 한 애매한 존재인 동시에 역설과 수수께끼로 가득 찬 애매한 언행을 일삼는다.
 ‘맥베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마녀들의 이 역설을 입증하는 극구조다. 극 초반에서 역모를 진압하던 충신으로 역모자의 목을 효시했던 충신 맥베스는 막이 내릴 때는 자신의 목이 효시되는 역설적 인물이다.
 맥베스 부부에게 아름다운 존재로만 보이던 왕권은 막상 차지해보니 그들을 끝없는 불안과 괴로움으로 몰아넣는 추한 것이었던 것.
 이런 역설들을 통해 셰익스피어는 세상만사 그 어떤 것도 양가적이고, 가변적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맥베스’에는 외양과 실재의 괴리를 상징하는 다양한 대사가 등장한다.
 “던컨 왕: 사람의 얼굴만 보고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길이 없구나. 내가 그 자를 진정 믿었건만.”(1막 4장)
 “맥베스 부인: 영주님, 당신의 얼굴은 누구든 수상한 점을 읽을 수 있는 책 같습니다. 사람들을 속이려면 남들과 같은 표정을 지으셔야 합니다. 당신의 시선에, 손길에, 언어에 환영의 뜻을 담으세요. 순진한 꽃처럼 보이시되 그 밑에 도사리고 있는 뱀처럼 행동하십시오.”(1막 5장)
 맥베스는 왕권에 대한 도덕적 갈등에 휩싸인다.
 “맥베스: 현세에서 우리가 피비린내 나는 일을 가르치면 그것은  가르친 자에게 되돌아오지. 공정한 정의의 여신은 우리가 부은 독배를 우리의 입술에 붓는다….내 의도에 박차를 가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구나. 그저 야망만이 혼자 날뛰다 반대쪽으로 고꾸라질 뿐.”(1막 7장)
 “맥베스: 제발 그만하시오. 인간이 할 짓이라면 뭐든 하겠지만 그보다 더한 짓을 하려는 자는 인간이 아니오.”(1막 7장)
 맥베스 부인은 맥베스보다 강하다.
 이 극에서 맥베스 부인은 맥베스보다 더 강인하고 냉혈적인 캐릭터이다.
 맹세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방글거리며 젖꼭지를 빠는 갓난아기를 태질을 쳐서 머리통을 부셔 버릴 수도 있다는 대사는 그녀의 그런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한 몫을 한 유명한 대사이다.
 “맥베스: 위대한 바다의 신 넵튠의 온 바닷물인들이 손에 묻은 피를 씻어낼 수 있을까? 아니다. 오히려 이 손이 거대한 바다들을 진홍빛으로 만들며 푸른 대양을 붉게 물들일 것이다.”(2막 2장)

 “맥베스 부인: 제 손도 당신 손처럼 붉어졌지만 당신처럼 창피스럽게 하얗게 질리지는 않아요. 물 조금이면 우리가 한 짓을 씻어낼 수 있으니 얼마나 쉬운 일이예요?”(2막 3장)
 맥베스는 도덕적 갈등으로 인해 환영과 환청에 시달린다.
 던컨왕을 시해하러 갈 때 두려움에 사로잡힌 맥베스의 앞에 피 묻은 단검의 환영이 나타난다.
 맥베스가 던컨 왕을 시해했을 때 허공에서 “맥베스는 잠을 죽였다. 글래미스 영주는 잠을 자지 못하리.”라는 환청이 들린다.
 셰익스피어는 환영과 환청을 통해 엄청난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이 겪는 심리적 병리 현상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맥베스: 내 앞에 어른거리는 이것은 단도가 아닌가? 손잡이가 내 쪽을 향하고 있군. 어디 잡아 볼까. 눈에는 보이는데 잡을 수가 없구나…. 아니면 열에 들뜬 머리가 만든 마음 속 허상이란 말이냐? … 내 눈에 이런 환영이 보이는 것은 내가 저지르려는 잔인한 행위 때문이다.”(2막 1장)
 극 초반에 유약한 맥베스와 달리 몰인정하고 담대하던 맥베스 부인은 극 후반으로 가면서 점점 맥베스와 성격이 도치된다.
 맥베스는 점점 저돌적이고 냉혹한 살인마로 변모해 가는 데 반해, 맥베스 부인은 밀려드는 온갖 공상과 자책감에 시달리며 괴로워한다.
 또 맥베스에게 잠을 자라고 권하던 그녀 자신이 몽유병에 걸려 결국 자결하고 만다.
 “맥베스 부인: 아직도 피 냄새가 나는구나. 온 아라비아의 향수를 쓴다 해도 이 작은 손에서 향기가 나게 할 수는 없겠지. 아!아!아!”
 “전의: 천륜을 어긴 행위는 비정상적인 고통을 낳는 법. 고통받는 영혼은 귀머거리 베개에라도 대고 비밀을 털어놓는 법. 왕비마마께는 의사보다도 신의 도움이 필요해.”(5막 2장)
 라깡의 욕망 이론으로 맥베스의 욕망을 해석해보는 것도 재미다. 채워지지 않는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의 욕망은 라깡의 욕망 이론에 나오는 S◇a라는 공식에 완벽하게 적용된다. 이 공식에서 S는 주체이고 a(오브제)는 주체로 하여금 끊임없이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허구적 대상이다.
 또 마름모꼴은 대상이 결코 주체의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결핍이다.
 우리를 욕망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온갖 아름다운 것들은 완전한 소유가 불가능하기에 우리를 괴롭히기만 하는 결핍이거나, 아니면 막상 소유하게 되면 그 아름다움이 사라지고 마는 허구적 대상인 것이다.
 “맥베스: 피는 피를 부른다고들 하지 않던가? 돌이 움직이고 나무가 말한다고도 하지 않던가? 사물의 인과를 알고 있는 점쟁이들이 까치와 까마귀를 통해 비밀스러운 암살자를 폭로한다 하지 않던가?”(3막 4장)
 ‘맥베스’에서는 또 문지기 장면을 놓쳐선 안된다.
 문지기가 자신을 지옥의 문지기라고 자처함으로써 자연스럽게 맥베스의 성은 지옥이 된다. 그야말로 맥베스의 성은 왕이 시해되고 질서가 전복된 아수라장이요, 맥베스가 겪는 내면의 고통으로 볼 때도 지옥인 점으로 볼 때 셰익스피어의 재치가 엿보이는 설정이다.
 “문지기: 술이란 놈은 우리에게 세 가지를 불러일으킵죠. …딸기코 만들기, 졸음, 오줌. 이 세 가지입죠. 음욕은 불러 일으켰다가는 죽여 버리죠. 다시 말해 술이란 놈은 음욕을 부추기고는 그 실행 능력을 앗아가 버립니다. 그래서 과음은 색욕에 있어서는 사기꾼이라 할 수 있습죠. 술꾼을 추켜세웠다가는 망쳐놓고 그를 부추기고는 낙담시키고, 그를 설득해놓고는 용기를 앗아가 버립죠. 그의 것을 세웠다가는 다시 주저앉게 하죠. 결론적으로 잠 속에서 술꾼에게 사기치고 거짓말을 하고는 내팽겨쳐 버립죠.”(2막3장)
 신역사주의 비평가들은 ‘맥베스’가 왕권의 신성과 정통성이라는 통치 이데올로기를 옹호하고 확산시킨 극이라고 비난해왔다.
 셰익스피어는 맥베스가 반란군을 진압하는 장면을 고의적으로 잔혹하게 묘사함으로써 정통 왕권도 유혈과 잔인한 무력을 바탕으로 유지되는 것임을 드러낸다.
 또한 “아름다운 것이 추한 것이요, 추한 것이 아름답다”는 역설이 극 전체를 지배한다.
 그래서 어떤 비평가들은 이 극이 정통 왕권의 치부를 들춰내어 그것의 신성함을 해체한 극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맥베스는 극의 후반부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
 “맥베스: 나는 충분히 오래 살았고 내 인생길은 말라빠진 누런 잎으로 변해가고 있다. 노년에 수반되어야 마땅할 명예와 사랑, 복종과 친구들을 기대할 수는 없구나. 대신 소리는 작아도 뿌리 깊은 저주와 거부하고 싶어도 내 나약한 마음이 감히 그러하지 못하는 입 발린 존경 뿐.”(5막 3장)
 지난 1~22일까지 4회에 걸쳐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햄릿’, ‘리어 왕’, ‘오셀로’, ‘맥베스’를 순서대로 만나봤다.
 이번 강연을 통해 셰익스피어를 제대로 알았다면 지금부터는 작품을 통해 셰익스피어의 아름다운 언어를 탐독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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